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용감한 형제 (문단 편집) == 생애 == 어린 시절에는 상당한 우등생이었다고 한다. 하지만 아버지가 장남이자 형인 강흑철만 [[편애]]하고 자신은 계속 푸대접하는 바람에, 성장하면서 많은 방황을 했다.[* 형 강흑철은 이에 대해서 어릴 때 자신만 사랑받고 자란 것 같아서 지금까지도 동생에게 미안하다고 한다. 강동철 본인은 철이 없던 시절에는 이 때문에 형을 싫어하기도 했으나, 지금은 무명 생활 때 형이 아르바이트나 집안생활을 도맡아 본인이 음악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준 형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.] 학교 일진에서 그치는 수준이 아니라 고등학생 때 정통파 조폭에 들어가서 활동했다고 하니, 단순한 불량 학생 출신의 연예인들과는 격이 다른 인물이며 정말 끔찍한 조직 범죄자들의 세계[* 방송에서도 그 시절은 지금 돌이켜 봐도 너무 끔찍해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 적이 있다.]에서 위험하고 거친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. 무릎팍도사에서 [[유세윤]]이 첨언하기를, 그가 살던 지역 부근에선 그의 폭력에 대한 공포의 소문으로 유명했다고. 결국 17살에 수갑을 차고 [[구치소]]에 수감당했으며, 2달 반 정도 살고 나와서 2년 6개월의 보호관찰을 받았다. 그 당시 폭력 전과 12범에 [[룸살롱]] 전무까지 했다고 한다.[* 활동 초창기에는 대외적인 이미지를 고려해 클럽 DJ라고 말했으나 [[한국방송공사|KBS]]의 [[김승우의 승승장구]]에 나와 다른 어두운 과거와 함께 고백했다.]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중, 관리하던 유흥업소의 [[DJ]]하는 동생이 가져온 [[사이프러스 힐]]의 [[CD]]를 듣고 [[조폭]] 생활을 청산하고 음악을 하고 싶다는, 처음으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. 그렇게 음악을 해 보기로 결심하고 뛰쳐나온 그는 '''바로 다음날'''에 [[낙원상가]]로 찾아갔고, 거기서 무작정 어떻게 비트를 찍어야 되냐 물어봐 가며 음악 장비들을 사와[* 당시에 아무것도 몰라서 사기도 많이 당했다고 한다.] 처음 비트를 찍기 시작했다. 정말 생 초짜다 보니 [[시퀀서]]에 소리 넣는 법만 2~3주가 걸렸다고. 그렇게 음악을 시작한 후 1998년 [[현대방송]]에서 주최한 오디션에서 싱어송라이터 부분 금상을 받기도 하고 모 기획사에 연습생으로도 들어갔는데 자신은 그냥 가수가 아니라 미국의 힙합하는 친구들처럼 되고 싶어서 얼마못가 나왔다고 한다. 그렇게 친형 강흑철[* 원래는 형이 (간단히 [[드럼]]만 찍는 수준이었지만) 먼저 비트를 찍었는데 [[입대]]를 하게 되어 결국 본인이 맨땅에 헤딩 식으로 배워 비트를 찍고 이후 형은 작사를 담당했다고 한다.]과 함께 데뷔를 목표로 6개월 간 골방에서 곡을 만든 뒤 그 중 9곡 정도 추려서 당시 힙합하는 회사 중 가장 큰 회사였던 [[YG엔터테인먼트]]에 [[법규]]를 날리는 손사진과 전화번호만 딱 적은 데모 CD를 던졌고 이를 들은 [[양현석]]이 그대로 뻑가서 바로 캐스팅되었다.[* 처음 연락이 왔을 때 사진을 보내 달라고 하여 "'''외모 보고 뽑으려는 거면 안 할래요'''"하고 그냥 끊었다고 한다.(...) 근데 다시 연락이 와서 "어떤 사람들인지는 알아야 될 거 아니냐, [[양현석|양사장]]님이 궁금해 하니 아무렇게나 찍어달라"고 설득하여 공원 앞에서 대충 찍어서 보냈는데 양현석한테서 직접 만나자고 연락이 왔고 다음 날 가서 바로 계약을 했다고 한다.] 그러나 작업한 곡의 가사가 너무 쎄고 적나라하여 수정만 하다가 2년이 훌쩍 지나 어느새 유행과 동떨어진, 철지난 음악이 되어 버렸고 YG 측에서도 이제 좀 힘들 것 같다고 난색을 표해 화가 나서 잠수를 타버렸다고 한다. 하지만 절치부심하여 당시 유행하던 클럽튠 음악을 새로 쭉 만들어 가지고 돌아왔는데[* 이때 만든 곡 중 하나가 [[렉시(가수)|렉시]]의 '''눈물 씻고 화장하고'''이다.] 이를 들은 양현석이 깜짝 놀라며 "넌 [[프로듀서]]로서 재능이 더 있는 것 같다. 다른 가수에게 곡을 주면 어떻겠냐"고 권유하였고 이를 받아들여 프로듀서로 전향하게 된다. 형 강흑철은 동생이 먼저 프로듀서로 전향한 후에도 Black Soul이라는 예명으로 가수 데뷔 준비를 하다가, 지금은 동생 회사로 들어가서 일하고 있다. [youtube(H2COgGDp8W8)] [[BIGBANG|빅뱅]]의 '[[거짓말(BIGBANG)|거짓말]]' 편곡, '[[마지막 인사]]' 작곡 및 편곡을 맡아 대박을 친 후 독립하여 [[브레이브엔터테인먼트]]를 세웠다. 독립 후에도 [[브라운아이드걸스]]의 '어쩌다', [[손담비]]의 '[[미쳤어]]' 등이 성공하며 트렌드 작곡가로 자리잡았다. 하지만 특유의 강한 전자음과 [[후크송]]이라 불리는 비슷한 곡 전개로 인해, 비판도 많이 받는 것이 사실이다. 정식으로 음악 수업을 받은 적이 없어서 아직도 코드가 뭔지도 잘 모른다고. 그냥 드럼 비트부터 찍은 후 자기 귀에 맞는 코드와 신스를 올리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한다고 한다. 실제로 용감한 형제의 곡으로 활동한 그룹들은 대부분 히트에 성공했다. 특히 걸그룹이나 여성 솔로 가수와 용형의 조합은 대다수 히트했다. 브라운 아이드 걸스와 손담비, [[애프터스쿨]], [[씨스타]], [[포미닛]], [[AOA(아이돌)|AOA]], [[선미]] 등. 오죽했으면 그 당시 대박친 곡들의 대다수는 용감한 형제의 곡들이 다수였다.[* 나머지는 신사동 호랭이, 이단옆차기 등이 차지했지만 논란으로 개박살이 나버린 상황.] 반면 남자 가수는 빅뱅을 제외하고, [[빅스타(아이돌)|빅스타]] 등은 실패했다. [[2009년]] 8월에는 개인 디지털 싱글 를 출시했다. 타이틀 곡은 'Invisible'. 물론 이것도 후크송. 당시 2번 트랙인 Brave Sound가 선공개 되었는데, 전 소속사인 YG를 겨냥한 가사라는 소문이 무성했다. 2010년 8월, [[박재범]], [[DJ DOC]], [[현아]], B2K 등이 참여한 새로운 정규 앨범 '''The Classic'''을 발매했다. [[2011년]] [[무릎팍도사]] 출연으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으며, 그 후에는 [[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]] 시즌 3와 [[달빛 프린스]]에도 출연했다. [[김승우의 승승장구]]에 출연해서 밝힌 바로는 2008년 본격 데뷔 후 당시까지 50억 원을 벌었다고 한다. [youtube(hYnqQbqlI0E)] [[2011년]] 씨스타의 [[So Cool (쏘쿨)]]이 멜론 연간 5위를, [[2012년]] 씨스타의 [[나혼자 (Alone)]]가 멜론 연간 2위, [[2013년]] 씨스타의 [[있다 없으니까 (Gone Not Around Any Longer)]]가 멜론 연간 10위를 하는 초대박을 내며 작곡가의 명성을 더 알리게 되었다. [[2013년]] [[삼성전자]]의 Allshare 광고의 악곡 Allshare star - DJ Spider를 작곡했다. 또한 오랜만에 자신의 프로젝트 곡인 '어이없네'를 공개했는데, 논란이 많다. 아래 비판 부분 참조. [[2015년]] 7월, [[AOA(아이돌)|AOA]] 차트 성공에 가장 큰 공로자로 평가받고 멤버들이 방송에서 인정도 하면서 다시 한 번 최고의 작곡자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. [[미국]]에 [[http://m.entertain.naver.com/read?oid=421&aid=0001486797|진출한다.]] [[YG엔터테인먼트|YG]]를 겨냥한 노골적인 [[언론플레이]]를 자주 했는데 공교롭게도 래퍼가 동명의 미국인 [[YG(래퍼)|YG]]. [[2016년]] [[3월 11일]]에는 [[나 혼자 산다]]에 출연하여 소녀 같은 감성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.[* 소속 가수인 [[브레이브걸스]]나 다른 연예인 지인들도 실제로 눈물 많고 감성이 매우 여리다고 증언하기도 했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